그렇게 이야기를 마치려던 찰나였다.

유리로된 벽 너머 바깥 풍경으로 낯선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세계가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는것만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솨아..'

끓어 오르던 더위를 모조리 식혀려는듯 맹렬하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안은 조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비가 워낙 세차게 내리고 있는데다가, 대다수가 (일기 예보를 보지 않았던 것인지)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 일행도 그 중 하나긴 하지만.
소나기인지 태풍인지 구분이 안간다. 이것도 엘니뇨 현상의 일부인가. 모르겠다.

대범이가 제일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거, 어쩌면 좋지? 이대로면 회사로 돌아가기가 곤란하지 않나?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 버릴지도 몰라."

나도 한 마디 했다.
"그렇네. 좋은 방안이 떠오르질 않는걸. 이거, 어떻게 돌아간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가게 안으로 황급히 소년 하나가 들어왔다.
아마 비를 피해 들어온 모양인가 본데, 운이 좋게도 비가 내릴때 이 카페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다.
옷이 별로 젖지 않은걸 보면 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면, 그 소년이 자전거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자전거에는 수수한 가방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대략 청남색과 갈색이 섞여있는 그런 가방이었다.

카페 종업원은 그 소년이 들어오자, 그에게로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 소년은 웃으면서(조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것 같았다.
아마 자전거를 들고 들어오니까 카페 종업원이 그걸 제지하려고 했고, 소년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야기한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문쪽을 바라보는 동안
나머지 세 사람은 특별한 말이 없었다.
다만, 그저 유리로된 가게벽 밖으로 쉼없이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다볼 뿐이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의 배경 소리에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함께 섞여서 들려온다.

대략 이런 이야기가 말이다.

"진현이, 뭐가 그렇게 바쁜데? 밖에 비오는거 안보이나? 돌아갈 궁리나 좀 하자. 응?"
"(노트북을 바라보며) 아, 조금만 더 기다려봐바. 이번에 바이러스 샘플 하나를 구했는데, 이게 참 독특하고 재밌단 말이지. 휴러스틱 엔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금만 더 보고가자"

"규경이, 요즘 열심히 공부하는것 같던데. 지난번 시험에서 2등한거 너였나?"
"오, 웅이?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어, 맞다. 그거, 나였어.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것 같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귀를 기울여 보니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오는것 같다.
밖에 내리는 세찬 비만큼이나 활기가 느껴지는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그 와중에, 형준이가 입을 열었다.
"난 여기 남아서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야.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비오는 풍경도 좀 감상하고 말이지. 회사에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대범이가 말했다.
"괜찮겠나?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남았어."

이 광경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지민이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저 빗속을 같이 달려 가보는게 어떨까요? 빗속을 달려 회사까지 전속력으로 가는 거예요."
"아님, 저와 같이 단 둘이 뛰어갈분 계세요?"

"넵?"
"아하하하... 그거 참 낭만적이군요."
"아하하하.. 그거 참 좋군요."
"네. 그렇죠?"

"아하하하..."
"아하하하.."

'...'
..
..
..










..















...

















'.....!!'
그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머리위에 느낌표를 떠올렸다.
이.. 이건 무슨말이지? 비.. 빗속을 달려가자니?
당황스러웠다. 빗속을 달린 이후는 어쩌려고? 앓아 눕는건 시간 문제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상태로 회사에 들어갈 순 없잖아? 안그런가?


잠시만 생각을 정리해 보자.
씩씩한 그녀가 뭐라고 말했지? 빗속..을 달려가자고 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에 늦을수도 있다는 거지. 현재 시간상으론 그럴 확률이 높긴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카페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도 되지 않나? 그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텐데.. 혹시, 카페에서 회사까지의 거리가 애매해서 그런가? 차가 밀리면 오히려 더 늦을수도 있다는 건가?

으음... 그녀의 의중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꺼낸거지?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그저 조금은 수줍은 듯한 얼굴로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으으.. 모르겠군. 도저히 모르겠다.
혼자 끙끙대 봤자 소용없겠지.
일단 한 번 물어봐야겠군.

"대체 왜 뛰어서 가자고 이야기 한거죠? 카페앞에서 택시를 타고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 그건 말이죠, 그냥 한 번 이야기를 꺼내본 거예요. 일종의 농담 같은거죠. 후훗."


난 대체 왜 이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거냐!

...
...
...


"(갑자기 일어서며) 택시 타고 갈사람?"
"대범: 저요. 타고 가자."
"형준: 응. 그게 좋겠네."

(카페 문 열리는 소리) 드르륵-. 척.
(차 문 열리는 소리) 탁-. 착.

부웅-.

그렇게 세 사람은 먼저 떠났다.
그녀는 홀로 카페에 남겨졌다.
이야기 끝.




... 

...











....




















...




















..












.




















.








.


















.


















이야기 끝...은 좀 심한 농담이고.
음, 어디까지 했더라. 공간을 너무 늘려놔서 잊을뻔 했네.

농담이었단 그녀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황당하단 표정을 풀고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

대범이가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일어서자. 오후 시간 시작해야지."

대범이의 말이 끝나자 마자 세 사람은 모두 "그래, 이제 출발하자."고 답하고 일어섰다.
이야기 하는동안 어느새 밖의 비는 그쳐 있었다. 정말 거짓말 같았다.
뭐냐, 이건.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구만.

밖에 나온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공기가 상당히 신선하고 맑네. 방금전까지 상당한 양의 비가 왔다는게 거짓말 같은데."

형준이가 말했다.
"덕분에 공기도 시원해 졌고, 제 시간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여러모로 잘됐네. 여름 소나기라서 그런거겠지."

그 순간, 지민이가 반대쪽 하늘을 가리키며 이야기 했다.
"오. 무지개네요. 무지개가 뜬것 같은데요? 저쪽 하늘을 한 번 보세요."

우리 일행은 지민이가 가리키는쪽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선명하게 반원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무지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상당히 의외였다.

"아름답네요"
그녀가 말했다.

대범이는
"오오. 예쁘네."
라고 말했고,

형준이는
"이야. 이 타이밍에 무지개인가"
라고 말했으며,

나는
"최근 들어 무지개를 본적이 없었는데.. 참으로 오랫만이네"
라고 말했다.

걸어 가면서도 줄곧 무지개가 보였다.
꽤나 높은곳에 걸려 있는지, 조금 높은 건물이 버티고 있어도 시야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회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 작가 후기:
이번글에선 신 인물을 (잠시) 등장시키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조금 무리해 봤습니다.

글 내용이 지난번 보다 좀... 조금..
그렇지요? 흐흐. ^^;;

두 세가지 내용을 떠올려 뒀었지만
결국은 이 방안들을 다 무시하고 완전히 엉뚱한 내용으로 글을 작성해 봤습니다.
조금은 장난을 쳐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흐흐.

다음글부턴
본 궤도(?)로 돌아오기 때문에 안심(;;) 하셔도 됩니다. ^^